수많은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을 다녀와서 잠들기 전에 생각나는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는가? 나에게는 베르나르 뷔페의 초상화나 , 케니 샤프의 피카붐처럼 '인상 깊은 표정'을 담고 있는 그림이었다. 작가의 감정을 공감하기도 하고, 유추해보기도 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에게 처음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표정에 나타난 감정을 나에게 적용하여 해석하는 과정이었다. 그 작가의 그림을 깊이 감상하면, 그 감정이 전달되어 알 수 없는 씨앗처럼 자라날 때가 있다. 아름다운 열매가 열리는 나무일 때도 있고, 가시나무처럼 찔러 한동안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감정의 전달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시간이 흘러, 그림을 그리는 지금, 나에게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표정묘사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 나에게 나의 그림을 편하게 보는 방법을 물어본다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집중해달라 말하고 싶다. 표정에 드러난 감정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말을 걸고자 하는 것이다. 감정표현의 목적과 이유는 분명하지만 틀에 가두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우울과 괴로움과 고통을 위한 가시로 전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 인물 묘사보다 아이콘적인 특징에 매력을 느낀 듯하다. 내가 나타 내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지만 여백이 있는 감정의 묘사이다. 탕자의 작업을 예로 들면, 아버지를 떠나 모든 것을 잃고 돌아가는 탕자의 표정을 통해서 그 복합적인 심정을 나타내고자 하지만, 감정의 주입보단, 실질적 의미로 전달되길 바란다. 나와 일치된 경험을 통해 공감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공감을 통한 은혜가 있기를 바라며, 다른 관점으로 다가오는 이에게는 작가의 목적과 의도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자라는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한다.